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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공업 우선 발전전략(1949~1957)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설립후 국민당 관료자본의 몰수, 토지개혁과 재정개혁을 거쳐 ’53년부터 제1차 5개년 계획 시행

1840년 이래 전쟁과 파괴의 역사 속에서 수탈과 착취를 받았던 인민이 1949년 중국의 건국으로 자신을 위한 경제활동 개시

1950년대 이후 소련의 경제원조를 배경으로 급속히 추진된 중화학 공업육성정책은 과거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의 성과는 달성했지만 외화부족에 따른 사업부진, 자원낭비와 경제침체 유발 

중공업우선정책은 농촌경제라는 중국의 현실적 경제여건을 무시한 채 진행되었다는 비판이 제기 됨


2. 대약진과 인민공사화
☞대약진운동(1958-1960) 
    ‘토지개혁’과 ‘一五계획’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소련식발전전략의 문제점을 발견한 모택동과 중앙정부가 절대적으로 빈약한 공업수준을 자력갱생의 정신으로 빠르게 진일보시켜 원시경제체제를 진작시킴으로써 사회주의 건설운동을 보다 빠르게 완성하자는 취지로 전개한 정치운동. 


1) 대약진 운동의 배경
(1) 대외적 배경:“二五” 계획을 야심적으로 수립하고자 모택동이 1957년 11월 소련을 방문하여 적극적 경제원조를 요청. 그러나 이를 거절당하자 毛澤東은 자력갱생의 구호아래 삼면홍기운동(대약진 운동/인민공사화운동/사회주의 건설의 총노선)을 시작 
(2) 대내적 배경: “二五”계획 수립에 있어서 종합적으로 평형을 이루어 안정된 경제발전을 추구하자는 개혁파(專)에 대항하여 혁명적 사회주의를 건설하자는 급진노선(紅) 견지

2) 대약진의 전국적 전개
  중공중앙(정부)은 1958년 8월 13일 北戴河에서 정치국확대회의 소집 

대약진 운동의 결정-북대하 회의
 - 전국과 지방 농업을 공업으로 전환 
 - 농촌에 보편적인 인민공사의 건립을 결정 
 - 경제건설과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

대약진 운동의 전개
 - 15년 내에 영국을 따라잡자! 
 - 농공업생산 등 사업발전의 과도한 목표 설정 
 - 철강생산량은 1957년에 비해 두배 증가한 1070만 톤에 이를 수 있다고 규정

3) 농촌의 인민공사화 운동
  (1) 인민공사화 운동의 형성 
농업합작화운동의 일환으로 1957년 겨울-1958년 봄까지 농촌에서 대대적인 수리시설 건설 
1958.5 ‘八大’ 2차 회의 이후 각 지방은 합작사 합병활동 전개 
74만여개의 농업 생산합작사가 2만6천여 개의 인민공사로 개조됨. 
인민공사는 일종의 지방정부역할 수행 
철저한 집단소유제: 농기구, 가옥, 합작사 출자분은 인민공사소유. 식량, 의복, 주택 보장 

 (2) 인민공사운동의 폐해
 - 개인재산몰수
 - 집단공동생활로 가정파괴
 - 부녀자를 생산노동에 동원
 - 노동력의 혹사로 생산의욕 상실 

 (3) 급진적 공산화의 최후 결과 
 - 인민공사의 특징:  ‘一大二公’
  ⇒‘大’: 농업생산합작사를 능가하는 조직규모와 경영범위 
  ⇒‘公’은 집단소유제를 중심한 전인민소유제, 생산수단 사유제의 잔재 제거, 임금과 식량의 분배제도 시행을 의미 
 - 문제점: 균등, 징발과 배치, 배급이라는 정책은 농민의 불만만 야기. 갑작스런 소유제 형식의 변화와 촉박한 인민공사화 운동은 오히려 농촌경제발전을 가로막음. 

4) 좌경 착오의 교정 및 지속적 발전
1959년 7-8월 여산회의, 모택동은 과거 중공업 중심의 불균형 발전을 버리고 농업을 최우선으로 하며 종합적 평형을 이루는 경제계획을 강조 

대약진과 인민공사화 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한 팽덕회로 인해 입지가 불리해지자 팽덕회의 발언을 우파사상, 우파활동으로 규정하고 공격

모택동 국가주석 사임 및 유소기의 국가주석 취임

대약진 정책의 오류로 2,000만 명 이상이 기아로 사망 

유소기, 등소평 등 실권파의 좌경착오 교정의 경제개혁

紅과 專의 모순 관계 노정


3. 경제조정기(1961-1965) 
專으로의 전환: 유소기, 등소평 등 실권파의 대약진 정책의 오류교정
대약진의 기본 이념 포기, 수정 개발 정책 채택 
투자규모 축소, 기존 공장 설비 보완, 생산품의 질적 향상 
농업발전의 중요성 강조, 농업투자에 필요한 필수물자 대량 공급 
과도한 공업 건설계획 조정, 소비재 산업과 중공업의 균형 도모 
교역 상대국을 소련에서 일본, 서유럽 국가로 전환
5년 간의 조정정책으로 경제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성장의 모습 보임

4. 문화대혁명 시기(1966~1978)
  1) 문화대혁명 시기의 경제정책
   홍으로의 선회: 모택동이 정권 장악, 혁명과 생산으로 생산촉진
自力更生 강조
도시의 농촌화
물질적 자극 노동에 의한 분배의 경시 및 부정
계획경제시스템의 지방분권화
전문가에 의한 공장관리제의 폐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해소
계획화 과정에서 대중 참가와 공산주의적 인간을 양성으로 三大産別(농업과 공업, 도시와 농촌,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해소


2) 문화혁명 초기의 피해 사례

교육사업에 대한 파괴와 지식분자에 대한 박해→장기적으로 국민경제의 악영향

홍위병(紅衛兵)의 이동으로 인한 교통운수의 부담증가→교통마비에 따른 경제적 손실

생산의 지휘계통 탄압, 생산질서 파괴로 공업생산과 기본건설에 악영향

상업, 체신, 금융 등의 경제부문 피해 발생


3) 문혁 중의 국민경제

경제관리기구의 근본적인 마비→권력투쟁에 의해 위로는 국무원과 각 부처 위원회 아래로는 기업의 생산지휘계통까지 타격을 받아 개조 내지는 폐지(예: 1968년에는 기본적인 통계자료조차 제공을 못해 국민경제계획이 없었던 유일한 해)

교통운수의 두절과 석탄생산의 감소로 인한 경제질서의 혼란

기업의 조업중지로 인한 설비능력 방치→노동자의 혁명동요로 제1선의 노동력이 부족 

소유제의 ‘과도기’와 자본주의 추종자의 제거→집단소유제에서 전인민소유제로 전환

4) 문혁기의 경제구조적 문제

중소분쟁과 냉전이 격화를 의식한 국방산업의 건설과 공업의 내륙지역 분산배치로 인한 규모경제의 미실현과 자원배분의 왜곡이 심화

계획지표 높게 설정, 고축적률 유지로 농업부문의 착취 확대

농업, 경공업의 발전 경시, 중공업 발전을 중시로 산업간 불균형 심화

공업은 철강 제일주의, 농업은 식량 제일주의라는 교조주의적 정책으로 산업간 분업체계 확립 실패

극좌사상에 따라 빈농이 주도권을 장악한 풀뿌리민주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인민공사, 생산대대의 규모가 맹목적으로 확대되고, 평균적 분배가 실시됨에 따라 농촌의 다각경영과 가정부업이 사라지고 도시의 개인경영경제가 소멸되어져 개인서비스 공급이 불가능



5) 제 4차 5개년 계획(四五계획) 추진(1971~1975)

내륙의 전략적 후방건설 가속화
철강공업 생산 능력 제고
전국을 서남, 서북, 중원, 화남, 화북, 산동, 민강, 신감 등 10개의 경제협력구로 구분해서 각 협력구에는 단계적으로 야금, 국방, 기계, 동력연료, 화학 등의 공업건설을 요구함과 동시에 비교적 우월한 농업과 경공업 및 발달된 교통운수업 건설 계획
지방의 “5소기업”을 대대적 발전
연료구성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킨다.
농업은 “식량증산을 경제시책의 중심”, 식량이 부족한 성과 구에 식량과 식용유의 자급 달성, “남쪽의 식량을 북쪽으로 옮겨 국면 전환”
기계공업의 대대적 운영
경공업에 “과다한 간섭”은 비판하지만, 모든 것을 국가의 조달에 의지하려는 나태한 사상도 비판


5.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시장경제(1978~1990)
’78년 등소평 집권 이후 ‘흑묘백묘론’, 선부론에서 출발하여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체제’로 완성되는 개혁개방정책 추진

집단노동방식을 철폐하고 농민에게 토지경작권을 부여하는 ‘가정책임경영제’ 실시로 농산물 생산량이 획기적으로 증대

국영․집체(집단소유제)기업이 주종을 이루던 경제구조에서 민영기업을 허용함으로써 도시의 고용문제 해결과 시장경제의 기초 마련

자력갱생을 탈피하고 연해도시의 개방, 경제특구 설립 등 대외 개방을 통하여 선진기술 도입과 경제개발자금 조달

기업의 진입퇴출을 규율하는 회사법 제정, 국유기업 노동자에 대한 고용계약제 등 시장경제의 초석 마련

동 기간 중 시행된 제5․6․7차 5개년 계획은 중국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뒷받침

제7차 5개년 계획 기간(1986-90년)에는 높은 인플레이션, 천안문 사태 등으로 사회주의 체제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신보수주의 논의가 대두


남순강화와 중국식 사회주의(1990년대)
남순강화(南巡講話): ’92년 등소평이 지도부의 보수적 분위기를 변화시키기 위해 상해, 심천, 주해 경제 특구를 시찰하면서 개혁개방 확대를 주장

1990년대 들어 ‘사회주의적 시장경제(socialist market economy)’ 도입을 위한 제도 개혁 지속

외자유치 촉진, 이중환율제 폐지와 경상거래 자유화, 민영기업을 위한 회사법 제정,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는 헌법 개정

상해․심천의 증권거래소 개설, 국유기업의 거래소 상장, 노동시장 규제완화를 위한 사회보장시스템 개혁 등 추진 

1990년대 초반이후 민간부문의 역할 확대로 경제적 호황 유지, 1990년대말 아시아 외환위기과정에서도 7% 이상의 성장


중국 건설의 총설계사-덩샤오핑鄧小平 
덩샤오핑은 1978년 12월 중공 11기 3중전회, 권력 장악, 개혁개방 추진

1987년 중공 제13기 전국대표대회(13차 당대회), ‘3보(步) 발전목표’ 제시

 ‘3보 발전’:  ‘원바오(溫飽·기아 문제가 해결된 사회) → 샤오캉(小康·기초 복지가 보장된 사회) → 다퉁(大同·모두가 잘사는 사회)’의 3단계 발전방안

 다퉁大同 : 예기(禮記)에 나오는 이상적인 사회, 지금은 ‘선진국이면서도 글로벌 리더국가’라는 의미로 해석

두 개의 100년’ 개념과 ‘3단계 발전론’: 덩샤오핑은 샤오캉 사회의 완성을 공산당 창건 100주년인 2021년까지로 설정
 
중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 ‘전면적 다퉁사회 진입’ 달성 목표 

덩샤오핑은 “국가 정책은 100년 주기로 관리해야 한다”며 “이후 공산당이 목표를 바꾸어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경제구조개혁의 심화와 대외개방(2000년대)
   
WTO 가입(’01)에 따른 중국시장 개방, 국유기업의 민영화 가속화, 부실금융기관의 구조조정, 환율제도 개편, 물권법․반독점법 제정
 
WTO 가입이후 관세인하, 금융시장 개방, 외자유치와 해외투자 확대, 아시아권 국가와의 FTA 체결 등 개방폭 확대 

‘08.9 세계 금융위기 이후 위안화는 달러당 6.82 위안으로 고정(peg) 운용되었으나, ’10.6 관리변동 환율제도로 전환


경제발전방식의 전환과 12차 5개년 계획(’11-’15년)
   
중국경제는 ’12년말 기준 경제규모 세계 2위, 교역규모 세계 2위, 외국인 투자 유치(FDI) 세계 2위, 외환보유고 세계 1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
’12년말 기준 GDP 8.26조불(52조위안), 교역규모 3.87조불, FDI 순유입 1,117억불, 외환보유고 3.31조불 
’78년 이후 12년말까지 평균소득이 약 56배 상승하였고, 평균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0.0%에 이르는 경이적 성과 달성
다만, 그동안의 수출주도형․외자의존형 양적성장전략에 수반되는 지역․계층․도농 간 소득 격차확대, 환경․에너지보전과 성장과의 부조화 등 중국 경제의 모순 노정
제12차 5개년 계획(’11-’15)은 세계금융위기 대응, 2020년 전면적인 소강사회 건설을 위한 5년간의 경제사회 발전의 주요 목표를 제시(경제성장률 목표치 7.5% 설정, 경제발전 방식의 전환을 통한 경제의 질적성장, 소비 및 내수 확대, 서비스 산업 장려, 7대 신흥전략산업 육성 등)


13.5 계획의 주요내용: 시진핑 주석이 제시한 중국의 꿈(中國夢)
중국공산당창당 100주년(2020년)까지 ‘샤오캉(小康)사회’ 건설

신중국 성립 100주년(2049년)까지 부강한 사회주의를 완성하는 ‘따통(大同) 사회’건설 목표

전면적 ‘샤오캉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13.5규획 기간 연평균 6.5% 이상의 성장률 유지

<국민경제와 사회발전 제13차 5개년 계획 강요>에서는 경제‧사회 발전 과정에서 반드시 견지해야 할 6대 원칙, 전면적 ‘샤오캉 사회’ 실현을 위해 향후 5년간 달성해야 할 7대 목표, 경제‧사회 발전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5대 발전이념을 제시

소강사회 건설을 위한 7대 목표
 (중고속성장유지) 2020년 GDP와 주민소득을 2010년 대비 2배 증가, 13.5계획기간 서비스산업화, 노동생산성증대, 도시화를 통해 6.5%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함으로써 2020년 전면적 ‘샤오캉 사회’를 실현
(혁신주도 발전) R&D , 진보, 인터넷경제 구현 등 혁신에 의한 경제성장
 (균형발전 강화) 경제성장에 대한 소비의 기여도 증대, 호적인구의 도시화율 향상
 (민생수준 제고) 고용창출, 교육, 문화, 사회, 의료, 주택 등 공공서비스 시스템 완비, 균등한 기본 공공서비스를 제공, 소득격차 축소, 농촌인구의 빈곤퇴치 추진, 빈곤 현(顯)을 개발하여 지역적 빈곤문제를 해결
 (국민의 소양함양 및 사회문명 수준제고) 공공문화 서비스 체계를 기본적으로 건설하고 중화문화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확대
 (생태환경 개선) 녹색, 저탄소 생산방식과 생활방식을 추진, 주체공능구 배치와 생태안전 보호막을 기본적으로 형성
(제도의 성숙화·정형화) 국가 거버넌스 시스템 발전시키고 각 분야에 기본적인 제도시스템 정비, 국민 민주를 완비하고 법치정부, 인권 보장, 실질적 재산권 보호, 새로운 개방형 경제 메커니즘 형성


5대 발전 이념 (혁신, 균형, 녹색, 개방, 공동향유)
혁신 발전: 국가 과학기술 중대 프로젝트 추진, 국가 과학기술센터와 기술혁신센터 건설, 선두기업 육성
균형발전: 3개 1억명 인구문제('1억명농민공도시호적 제공', '1억 명 거주 도시빈민촌개량', '중서부내륙지역 1억 명 인구 도시화')를 해결하고 상주인구 도시화율과 호적인구 도시화율을 각각 60%와 45%로 향상
녹색 발전: 대기, 물, 토양 오염 예방ㆍ관리 행동계획을 실시하여 GDP 단위당 용수량, 에너지 소비량,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각각 23%, 15%, 18% 감축
개혁개방 발전: 현대 재산권 제도, 법치정부를 건설하여 자원배치에 대한 시장의 결정적인 역할과 정부의 역할을 충분히 시행
공동향유 발전: 민생에 역점을 두어 기본적인 민생보장에 대한 유효공급을 확대하고 빈곤인구가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지원하며, 빈곤 현(顯)의 개발을 통해 지역적인 빈곤문제를 해결


13.5규획 –기회와 도전
(전략적 기회) 13.5규획 기간 중 개혁의 성과, 새로운 성장동력 육성, 일대일로를 통한 새로운 해외투자전략 등을 통한 성장 기회를 마련
(도전) 13.5규획 기간 중 지속적인 노동비용 상승, 총요소생산성 하락, 금융리스크 확대, 과잉생산 등은 위험요인으로 작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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