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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역사
대만이 중국 문헌에 나오는 가장 초기의 기록은 3세기 중엽 삼국시대에 심형이라는 사람이 저술한 임해수토지(临海水土志)라는 책에서 이주(夷州)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주라는 명칭으로 인해 타이완 섬이 아니라는 이견도 있다. 7세기 수나라때부터 타이완에 대한 한족의 정찰정략이 시도 되었으며 流求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流求는 현재의 오키나와이기 때문에 당시에는 오키나와와 대만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 것으로 추측 된다. 명대에 이르러 해상무역과 해적활동을 하는 한족의 정착이 늘어나면서 동방무역에 나선 서구 열강도 대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대만은 행정관할에 속하지 않았고 원주민, 한족, 일본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각자의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 네덜란드와 에스파냐의 격전 끝에 네덜란드가 지배권을 확립하였고 1661년 명나라가 청에 패배하자 정성공이 부하들을 이끌고 대만에 상륙, 네덜란드인들을 항복시키고 반청복명의 기지로 삼았다. 정성공이 죽은 후에 아들 경이 대만을 통치하면서 독립 된 국가로서 체제와 위상을 갖추게 되었고 1673년 청에서 삼번의 난을 틈타 복건성 일대를 점령하기도 하였지만 1680년 하문에서 패배, 대만으로 퇴각하였다. 정경이 사망하고 왕위 쟁탈전으로 대만은 급격히 쇠퇴하였으며 1683년 청이 대만으로 진격하자 3대 왕인 정극상이 청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항복하여 대만은 복건성에 예속되었고 타이난에 타이완부가 설치 되었다. 1884년 청프전쟁이 일어나자 열강의 침략을 막기 위해 대만은 성으로 격상 되었고 순무가 파견 되었다. 그러나 청일전쟁에 패배하면서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인해 대만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대만 주민들은 순무 唐景崧을 총통으로 추대하고 대만민주국을 선포하여 일본의 침략을 막으려 5개월 동안 무력 항쟁을 벌였으나 패하여 1945년까지 식민지배를 받았다. 1945년 10월 25일에 중국으로 반환되었으나 외성인과 본성인 사이에 갈등이 촉발되어 1947년 2 .28 사건이 벌어졌었다. 1949년 장제스가 대만으로 패퇴한 이후로 대륙 중화인민공화국과 구분되는 독자적 정치 체제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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